나는 된장찌개가 좋다. 입맛이 없는 날에도 된장찌개 안에 잘 익은 감자 한 덩어리를 발견하면 입에 침이 삭 고이곤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뭔가 바뀌었다. 회식이 많아지니 어릴 때에 비해 고깃집을 아무래도 자주 간다. 고기를 먹고 나서 공깃밥을 한 그릇 시키면 겨우 1000원만 받고는 거기에 된장찌개가 딸려 나오는 것이었다. 살찔 걱정이 없을 때에는 고기를 다 먹은 다음에도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을 꼭 먹고는 했다. 아무래도 달달하고 시큼한 고깃집 특유의 냉면 맛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이상한 일은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다음부터다. 얼마 전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뭘 먹을까 고민을 하는데 그날 기분은 된장찌개였다. “아줌마 된장찌개요!”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 고기 먹으면 그냥 받아 먹었던 된장찌개를 오늘 생돈을 내고 먹는 것이 갑자기 아까워졌다. 결국 난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원래는 먹고 싶지 않던 순두부를 먹으면서 언제부터 된장찌개가 이런 취급을 받게 됐는지 의아해졌다. 물론 내 취향의 리스트에서 그렇다는 말이지만 말이다.

이런 얘기다. 고깃집에서 덤으로 딸려 나오기 시작하면서 된장찌개는 독자적 정체성과 상품가치를 급속도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고깃집 입장에서야 비싼 고기를 사 먹으니까 된장찌개 한 그릇 정도는 서비스로 줄 수 있다. 그러나 된장찌개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별다른 가치가 없는, 밥 한 공기에 딸려 나오는 신세가 돼 버린 셈이다. 그러다 보니 밖에 나가서는 혼자서 독립적으로 ‘나도 일인분’이라고 얘기할 만한 위치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게다가 된장찌개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고깃집에서 나오는 된장찌개라는 것이 거의 공짜에 가깝다 보니 재료도 충실하지 않고(구이에 올리는 버섯의 꼭지를 따서 넣어 활용하는 식당도 있으니),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런가 보다 하고 별 감흥 없이 먹게 된다. 그러니 된장찌개 본연의 푹 익힌 맛이랄까, 다양한 재료들이 잘 섞여 나오는 복잡 미묘한 맛의 감촉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즘은 고깃집에서 된장찌개를 따로 돈 내고 시키라는 집이 야박하다고 느껴지기보다 차라리 반갑기까지 하다.

인생도 그렇다. 크고 강력한 인물이나 일에 옵션으로 딸려 가서 덤으로 좋은 자리에 묻어가는 것만큼 편한 게 없다. 내가 직접 갈 자리보다 훨씬 좋은 일에 참여해 과실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오래 반복되다 보면 된장찌개와 마찬가지로 내 정체성이 ‘덤 인생’이 돼 버릴 위험이 있다. 큰 모임에 말석이라도 앉아서 ‘나도 여기에 끼었어’라고 으스대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작더라도 내가 없으면 안 될 자리가 좋을까. 없어서는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평가는 ‘없으니 조금 불편한 사람’ 수준이었다는 것을 통감할 때만큼 비참한 순간은 없다. 내가 나한테 매긴 가치보다 객관적 평가라는 것은 가혹하고 냉정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내 가치를 낮추는 것도 순간이다. 된장찌개가 그랬듯이 고기 먹으면 공깃밥에 딸려 가는 덤으로 자기를 위치 짓게 되면 곧 사람들은 나를 찾지 않게 될 터이니 말이다. 살아가면서 어디서건 쉽게 가는 덤 인생의 유혹에서 벗어나 내 가치를 오롯이 지켜내기 위한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된장찌개 한 그릇 먹으면서 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건국대 의대 하지현 교수님의 글

된장찌개에서 뻗어 나가는 사고. 멋지다!